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단순한 디스토피아 SF영화를 넘어선다. 빙하기로 멸망한 지구를 배경으로, 살아남은 인류가 탑승한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갈등과 혁명의 여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지금 다시 보아도 그 충격적 결말과 상징성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설국열차’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인류의 인위적인 시도 ‘CW-7’이 오히려 지구를 빙하기로 만들어버리며 인류가 멸망한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설국열차’라는 열차 안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이 열차는 윌포드라는 한 인물이 설계한 자급자족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기차로, 끊임없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폐쇄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극단적인 계급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앞칸일수록 상류층, 뒷칸일수록 하류층이 거주하며, 뒷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인공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뒷칸에서 태어난 청년으로, 오랜 억압에 시달리던 끝에 혁명을 계획하게 된다. 그의 동료들은 모두 뒷칸의 고통을 함께 겪어온 이들이며, 이들은 무장한 경비원과 각종 장벽을 뚫고 앞칸으로 진격하기 시작한다. 그 여정은 단순한 액션의 연속이 아니라, 각 칸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상징과 시험, 인간성의 무너짐과 회복, 그리고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학교 칸에서는 세뇌 교육을, 식량 칸에서는 생존을 위한 통제 기술을 보여주며, 열차 자체가 작은 하나의 세계임을 상기시킨다.
이 모든 여정 끝에 커티스는 윌포드의 칸에 도달하게 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바로 자신이 윌포드의 후계자가 되어 열차를 운영하라는 것이다. 커티스는 인간이 시스템에 순응하고 결국 시스템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계승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깊은 내적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나머지 생존자들 중 하나인 남궁민수(송강호)는 열차 자체를 파괴하려 한다. 그는 바깥 세상이 다시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를 믿고, 열차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영화는 단순한 혁명이 아닌,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전면적 거부와 새로운 시작을 제안하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설국열차’의 시대적 배경은 명시적으로 ‘미래’이지만, 실상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자 은유로 가득한 현실 비판의 장이다. 봉준호 감독은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된 구조를 그려낸다. 열차 앞칸은 풍요와 권력을 상징하고, 뒷칸은 궁핍과 착취를 대변한다. 이는 오늘날 빈부 격차, 신분 불평등, 계급 고착화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장치다. 또한 열차가 멈추지 않고 순환한다는 설정은 이 시스템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착시를 주지만, 결국은 내부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열차의 앞칸과 뒷칸 사이에는 단순한 칸막이가 아닌, 사상과 세계관의 벽이 존재한다. 각 칸마다 펼쳐지는 공간의 대비는 단지 시각적 충격을 넘어, 인간의 가치관과 삶의 질이 어떻게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뒷칸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의 실체—곤충 단백질 블록—는 자원이 고갈된 사회에서 인간이 감수해야 할 생존 조건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스템 내에서 인간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영화는 또한 시스템 안에서 협조자와 반역자, 혁명가와 통치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칸의 일부 인물들은 뒷칸 사람들을 착취하며 생존을 연장시키고, 동시에 뒷칸의 일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같은 사람을 배신한다. 이는 단순히 선과 악, 억압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해석하기보다, 권력과 생존이 인간을 얼마나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세계관 속에서 남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는가?’이며, 설국열차는 그 답을 관객 스스로 찾아가게 한다.
‘설국열차’의 결말은 기존의 SF영화와 달리,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커티스는 윌포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남궁민수와 함께 열차를 멈추는 결정을 내린다. 폭발을 통해 열차 일부가 파괴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망하게 되지만, 어린 소녀 요나와 소년 팀이라는 두 인물이 눈 덮인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것은 바로 살아있는 북극곰. 이는 바깥 세상에 생명이 존재하고, 인류가 재건 가능한 가능성이 있다는 강력한 상징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피엔딩도, 전멸도 아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인류의 대부분은 파괴된 열차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 파괴를 통해서만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비판적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열차는 문명과 시스템을, 북극곰은 자연과 생명을 의미한다. 관객은 결국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던 폭력적 구조를 파괴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보게 된다.
‘설국열차’의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팬데믹 이후 강화된 계층 구조, 기후 위기, 생존 자원의 불균형 등 현실은 점점 영화 속 설정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설국열차’는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지도 모를 미래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지금 다시 봐도 충격적인 결말은 단지 놀라움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성과 인간 존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