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Cross)’는 분단된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 영화로, 빈부 격차와 체제 분열 속 개인의 삶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인물 중심의 감정선이 어우러지며, 사회적 메시지를 SF 장르로 풀어낸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시청자에게 ‘경계의 의미’를 질문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2024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디스토피아 서사 중 하나다.
영화 ‘크로스’는 가까운 미래, 부유한 ‘상부 지역(Upper Side)’과 빈곤한 ‘하부 지역(Lower Side)’이 거대한 장벽으로 분리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상부 지역은 첨단 기술과 자원이 풍부한 반면, 하부 지역은 의료·교육·치안 모든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극단적 격차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이 중심에 선다. 에릭(가명)은 상부 출신의 의료 기술자이며, 하부 지역의 실상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다. 반면 하나(가명)는 하부 지역에서 태어나 모든 불평등을 직접 겪으며 살아온 생존자다.
에릭은 정부의 의료 봉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하부 지역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하나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상부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에릭은 점차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부조리함과 위선을 자각하게 된다. 하나 역시 에릭을 통해 상부 사회의 인간적인 면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공감이 형성된다. 하지만 상부 정부는 하부 지역과의 교류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연결 자체가 금기시된다.
줄거리는 이들의 관계가 발전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따라간다. 불법 탈출, 정보 유출, 검문소 폭동 등 긴장감 있는 전개가 이어지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깊이가 돋보인다. 영화는 단순히 액션 중심의 SF가 아니라, 두 인물이 겪는 내면의 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중심에 두고 서사를 펼친다.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상부와 하부의 경계는 단순한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고정관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계’는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허물어질 수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크로스’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설정이 과장이 아닌 현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계층 간 격차와 공간의 분리, 정보의 불균형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목격되는 문제들이다. 상부 지역은 기술과 자본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며, 하부 지역을 방치하거나 관리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이는 마치 대도시와 변두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관계를 연상시키며, 단지 SF 장르로 포장되었을 뿐 그 본질은 현실 그 자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계층 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고,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독점과 통제를 강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영화 속 ‘상부 지역의 정보 시스템’은 AI와 감시 카메라, 생체 인식 등으로 하부 지역을 철저히 분리·감시하며, 그 내부에 사는 사람들조차 그 경계를 절대 넘을 수 없게 만든다. 반면 하부 지역은 기본적인 전기나 물조차 부족하며, 자체 조직이나 공동체가 생존의 수단으로 존재한다. 이는 오늘날 빈곤 지역에서 나타나는 ‘자력구조’와도 유사하다.
또한 ‘크로스’는 청년 세대의 박탈감, 기회의 단절, 이중적인 정의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특히 상부 지역 출신 청년들이 느끼는 허무함과, 하부 지역 청년들의 분노는 영화 내내 대비되며, 이질적이지만 결국 인간적인 공통 감정으로 귀결된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정치적 해석과 사회적 성찰을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이 영화는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입었지만, 실상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에릭과 하나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부 시스템에 저항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둘은 상부 지역의 거짓 데이터를 유출하고, 하부 사람들의 현실을 외부로 알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볍지 않다. 하나는 결국 체포되고, 에릭은 시스템 내부에서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히며 좌천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행보가 헛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하부 지역에서 작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상부에서도 소수의 젊은이들이 불만을 품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가 감옥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끝난다. 화면 너머엔 점점 허물어지는 장벽이 보이고, 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경계’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정해졌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사실 얼마나 인위적이며, 얼마나 쉽게 조작 가능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에릭과 하나의 만남, 그리고 그를 통해 조금씩 흔들리는 시스템은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영화는 비관적이되, 완전히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변화는 아주 작은 교류, 진심 있는 대화에서 시작된다고 조용히 말한다.
감상적으로 ‘크로스’는 긴장감과 서정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드문 SF 영화다. 화려한 특수효과보다는, 인물의 표정과 대사에 힘을 싣는 연출이 돋보이며, 배우들의 내면 연기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관계와 그 안에서 싹트는 연대는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크로스는 단지 가상의 세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경계’를 정의하게 만든다.